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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 오부장의 어린 시절, 신문배달을 하면서 몸으로 알게 된 책임감 작성자_ 오부장
2010-10-08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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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7일 목요일... 안녕하세요... 중고차 사이사이 오부장입니다... 꾸뻑 ^^*

 

엇그제 비정상적인 복장으로 신문을 배달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썼었습니다. (10월 5일 분)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자면, 이른 새벽에 신문을 배달하는 남자가 가끔씩 짧은 미니스커트나 원피스, 심지어는 그냥 팬티만 입고 배달한다는 제 집사람의 이야기를 듣고서 그장면을 동영상으로 녹화 한 후, 해당 신문 보급소에 연락을 취하며 동영상을 보내드렸었는데요. 오늘 마침 신문보급소 소장님으로부터 답변이 왔습니다.

 

소장님께서도 설마 설마 하면서 배달원과 오늘 진지한 이야기를 해 보니, 처음에는 아니라고 딱 잡아 떼더니만 제가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경찰에서도 조사중이라는 거짓말과 함께 이번일은 자기 선에서 마무리 지을테니 사실대로 말 하라며 종용을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만 그제서야 모든것을 인정하면서, 앞으로 다시는 불량스런 복장으로 신문배달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다는데요. 그러면서 소장님께서 말씀하시길, 다른 사람 같으면 벌써 난리가 나고 경찰에서도 다녀갔을텐데 조용히 일을 해결하게 해 준 저의 깊은 배려에 감사를 드린다고 하시더군요...

 

사실 저도 이 사건에 대해서 처음엔 해당 신문의 본사와 경찰에 신고를 할까도 생각 했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 해 보니, 이른 새벽에 신문을 배달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어렵게 사는 사람일꺼라는 불쌍한 생각도 들고, 신문보급소의 입장에서도 배달하는 사람을 구하기도 쉽진 않은 상황에서 앞으로 그러한 문제들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굳이 일을 크게 벌릴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일단 신문보급소에 먼저 연락을 취하게 된 것인데요. 어쨋든 좋게 마무리가 된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제가 원래 이렇게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냐고요? ㅎㅎ

 

꼭 그런것만은 아니고요. 사실 저도 어린시절에 잠시 신문배달을 했었던지라, 신문배달원의 고생들과 신문보급소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기에 일부러 일을 크게 벌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저의 신문배달은 1980년대 초,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의 일이긴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신문을 배달하는 것은 사람이 직접 해야하는 것이라서 아마도 크게 바뀌진 않았을껍니다.

 

당시, 저희집은 어렵게 살았었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초등학생이었던 제가 저희집의 생계를 책임 질 만큼 어려웠던 상황은 아니었지만, 저희 아버님께서는 넉넉치 못한 환경 속에서도 저희 다섯남매와 대학을 다니던 작은아버지(당시 삼촌)의 학비까지 책임지시다 보니 자식들의 용돈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름방학 동안, 저의 용돈을 벌어보고자 딱 한 달간만 신문배달을 하기로 했었는데요. 그게 어찌 어찌 하다보니, 결국 중학교를 다닐 때까지 만 2년을 하게 되었었습니다. (지금이야 미성년자가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법이지만 30년 전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었거든요...ㅎ) 

 

지금이야 오토바이가 있어서 그나마 편하고, 대부분 아파트나 빌라인데다가 지도와 주소만 알면 그리 어렵지는 않을테지만 당시엔 환경이 참 열악했었습니다. 우선 오토바이는 커녕 자전거만 있어도 훌륭한 편이었고요. 제가 신문을 돌렸던 80년대 초반의 상계동(제가 담당했던 곳은 당시 상계4동)은 거의 산동네여서 자전거도 거의 무용지물었기 때문에 신문보급소에서부터 배달을 마칠때까지 처음부터 신문을 옆구리에 들고 직접 걸어 다녀야 했었습니다.

 

당시엔 지도나 번지수 보다는, 배달을 해야 하는 집들을 일일이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제 앞에 배달을 하던 사람을 꼬박 일주일 동안 따라다니면서 배달해야 할 집들을 외웠었는데요. 그래서 제가 하루라도 배달을 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대신 배달을 해 줄 수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아파도 쉬지도 못하고 매일 신문을 돌려야만 했던,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ㅎㅎ

 

 

딱 한 달만 하기로 했던것이 2년을 하게 된 이유는, 신문배달은 사람이 직접 해야하는 것이기 때문...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저를 대신해서 배달 할 사람들이 수시로 오긴 했지만 당시 제가 담당했던 구역은 저희 신문보급소에서도 가장 힘든 난코스 중의 난코스여서 하루나 이틀정도 따라 다니다가 다음날부터 모두들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렇게 가을을 맞이하고, 겨울을 맞이하고, 해가 바뀌고 중학생이 되어 새로운 봄이 찾아왔지만, 저를 대신 할 배달원은 구할 수 없었습니다. 기껏 신문을 배달 하겠다고 온 사람들이 저만 따라가면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이 안나와버리니, 신문보급소에서는 혀를 내두르며 저의 월급을 올려주기까지 하며 조금만 조금만을 요청하게 되었고요. 그게 결국 만 2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게 된 것이었죠...

 

지금 생각 해 보면, 바보가 아닌이상 같은 월급을 받고 덜 힘든 구역을 배달 할 수도 있는데 굳이 어렵고 힘든 구역을 배달 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 같은데요. 저를 대신해서 배달을 하게 된 사람이 누군지, 지금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네요...^^*

 

 

지금 생각 해 보면, 그게 바로 어린 시절부터 몸으로 겪었던 책임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내가 맡은 일은 완벽하게 마무리가 되기 전까지 게을리 하지 않고 중히 여기는 마음...

 

한번 태어 난 이상, 부모님께 효도는 못할 지라도 불효는 하지 말아야 할 자식으로서의 책임감...

 

한번 결혼을 한 이상, 아내에게 항상 행복을 주지는 못해도 불행을 주게 해서는 안되는 남편으로서의 책임감...

 

한번 자식을 낳은 이상, 아이들에게 원하는 것을 모두 해 줄 수 있는 완벽한 부모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성인이 될 때까지 교육에 힘을 쏫고 바른길로 인도 해 줄 수 있는 부모로서의 책임감...

 

요즘처럼 험난한 세상을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책임감 만큼 중요한게 또 있을까 싶은데요. 내가 보여주는 책임감을 우리 아이들도 보고 배우리라는 생각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듯 하네요...^^*

 


미스터 10-10-11 07:27
 
백번천번 맞는 말씀이십니다.
한번 태어난 이상, 한번 결혼을 한 이상, 한번 자식을 낳은 이상.

대한민국의 수 많은 남성들이 그렇게 태만하게 생각하는 부분들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계신 오부장님을 통해
다시한번 책임감과 신뢰라는 단어를 깊이 되새겨 봅니다.

수 많은 분들이 보고 배워야할 덕목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