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친구 조만간 에이스 되겠는데?” (본심 : “흠… 그런데 엉덩이는 얼마나 무거울까?”)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경계하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고정관념으로 대상을 속단하는 것은 오류와 독단의 함정에 빠지는 지름길이며, 근본적으로는 자신을 작은 그릇 속에 가둬버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을 경계하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인간들이 쉽게 주관적 잣대로 사물이나 상황을 판단한다는 사실을 의미할 것이다.
특정한 지역민을 죽어라 혐오하는 사람에게는 이성적 논리를 동원하여 그것을 고치라고 말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특정한 지역민에게 사기 한 번 당한 그이의 특별한 경험 앞에서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다. 심지어 내가 알고 있는 한 여자는 과거에 아무개 성을 가진 남자와 두어 번의 연애실패를 경험했다는 이유로 이후 소개팅에 같은 성을 가진 남자가 나오면 진도 나가기를 멈췄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들은 지성 따위와 담을 쌓은 유아적인 사람들인가? 그렇지 않다. 다만 사람은 누구나 경험에 쉽게 지배당한다. 강도 높은 수련을 거치지 않는 한 그런 지배적인 경험이 사람의 경향성을 만들고 나아가 그의 성격이 되기도 한다.
능력 있고 잘 나가는 직원을 보는 사장 마음
사장이 직원을 바라보는 기준도 마찬가지이다. 보편적 규칙이 존재한다기보다 사장이 여태껏 경험했던 직원과의 관계 속에서 그 기준이 마련되게 마련이다.
우리 회사는 신입사원을 뽑을 때 학력이나 나이, 성별 등을 따지지 않는다. 이전 회사에서 사용하던 입사기준의 문구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 입고 있는 ‘빤스’ 색깔만 본다고 한다. 실제 하의를 내리게 하는 엽기적 면접을 해본 적은 없지만, 그만큼 외부적인 소위 ‘스펙’을 중요시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 |